개념
사회세계
데모폴리틱스
코스모 중재소
사회세계
사회세계는 여러가지의 케이스들과 사람들이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매 순간 그 세계를 새롭게 구성해가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은 순수하게 우리의 주관성이 반영되고 그것이 타자의 주관성과 끊임없이 결합하고 분열되고 또다시 결합하고 분열이 반복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구성된 공간은 다른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타자는 다시 그 구성물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학자 알프레도 슈츠에 의해 최초로 개념화 된 이 개념은,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와 온라인 내 상호작용이 증폭하는 현대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내부적인 케이스들이 내부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거나 또는 더 큰 공적영역에서의 토의와 의견들이 필요할 때, 그 케이스들은 사회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 세계는 이처럼 내부적 케이스들이 내적이면서 사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케이스 영역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에 진입했다는 것을 뜻합니다.여기에는 다양한 기능과 바탈의 철학이 배태되어 있습니다. 바탈은 개인적 영역에서 해결 될 수 없는 것은 개인을 뛰어넘은 집단적 영역에 의해 해결되어야 함을 문제 해결에 기본 접근법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하에, 해결되지 못한 개인적 문제는 집단적 접근으로 해결될 수 있고, 그 집단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더 큰 집단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게끔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에 가장 첫번째이자 중요한 사회 세계라는 공적영역은 내부적 케이스의 문제를 공론화하여,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합의 또는 해소에 도달하도록 설계되고 고안된 개념입니다.사회 세계 에서는 사회 여론조사. 사회의 소리, 숙의, 그리고 데모폴리틱 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데모폴리틱스
데모폴리틱스는 바탈의 정치 철학이며 새로운 정치 개념입니다. Demo와 Politics이 합쳐진 용어로, 말 그대로 시민주도정치를 뜻합니다. 데모폴리틱스는 기존의 Democracy와는 사뭇 다른 성격의 개념으로써, 시민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와 더불어 그것을 핵심적인 정치 원리로 두고 있습니다. Democracy가 국가의 결정에 있어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그러한 권력을 의미한다면, Demopolitics는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정치적 행위를 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자가 시민의 ‘권리’에 집중하고 있다면, 후자는 시민의 ‘행위’에 집중합니다. Democracy는 단순히 시민에게 정치적 결정의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뜻할 뿐, 이것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행위로 이어지는 것을 보장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다”라는 의미로 여태까지 오독 되어 왔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결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개념이 아닙니다. 단지, 국민이 국가적 결정에 참여하여 의논할 수 있는 권리와 권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민주주의에도 많은 한계와 현실적 제약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와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시민 자신들을 대표에서 그들 대신 국정의 업무를 도맡아 의논할 대리인을 뽑아 의논하는 제도가 대의민주주의입니다. 소속된 당원들과 국회의원들이 현재 이러한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시민들을 대표에서 의논을 해왔지만,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해서 갈수록 많은 사회적 지탄과 사회적 신뢰의 문제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여기에 대안으로 나온 것이,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라는 민주주의 한 유형이 있습니다. 국가와 지역사회에 중대한 결정에 있어 시민이 공적토론장(공론장)에 적극 참여하여 정책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숙의민주주의는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몇 성공 사례가 있긴 하지만, 절차의 복잡성과 이상적인 담화의 요구 그리고 비용과 시간의 문제가 그 치명적인 단점과 맹점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사실 민주주의는 그것이 직접민주주의이건 간접민주주의이건 대의민주주의이건 숙의민주주의이건 모든 유형과 과정에서 ‘숙의’는 기본적으로 이루어 져 왔고 이루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태껏 기존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숙의민주주의 필요성을 외치고 왔습니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오류는, 바로 숙의민주주의라는 ‘단어’ 이 자체에 있습니다. 우리가 숙의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마치 기존의 대의민주주의는 ‘숙의’가 실종된 것 마냥 인식하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게 됩니다. 대의민주주의처럼 숙의가 전문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의 한 유형에도 불구하고 말이죠.바탈은 이러한 여태까지 우리에게 주어지고 상식으로 굳어진 단어와 개념을 의문시 하여 그 단어의 본질을 직관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민주주의의 비효율성과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숙의민주주의라는 허구적 개념과 결별하고, 새로운 정치 제도를 소개합니다.우리는 그것을 민정주의 (Demopolitics)라 부릅니다. 데모폴리틱은 앞서 설명했다시피, 시민의 직접적이면서 주체적 그리고 역동적이면서 지속적인 정치적 행위를 통틀어 설명하는 정치 체계이며 정치 철학입니다. 시민이 참여할 권력이 참정권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는 다르게,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권리와 권력을 활용하는 행위성에 중점을 두는 민정주의는, 군중정치, 떼거리 정치와는 그 성격이 다르며, 단지 시민의 성숙함과 책임감을 요구합니다.시민들의 자발적인 의견 표출을 장려하고 모든이의 의견이 적절하게 반영되게끔 하는것, 그리고 그것이 결론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민정주의의 모토이자 핵심 원리입니다. 바탈에서는 사회 세계의 영역에서 데모폴리틱스(민정주의) 개념을 도입하여, 다양한 숙의와 투표를 제공합니다.
코스모 중재소
세계 중재소라는 의미를 지닌 코스모 트리뷰널은 바탈의 가장 최종적이면서 가장 높은 판단권을 갖는 공간적 개념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세계 영역에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만, 사회세계와 데모폴리틱을 거친 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마지막 영역인 이곳, 코스모 트리뷰널에 진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케이스들이 코스모 트리뷰널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을 갖지는 않습니다. 데모폴릭틱에서 특정수의 투표자수를 달성해야 만이 코스모 튜리뷰널에 진입하게 되는 자격을 갖게 됩니다. 케이스에 있어 대량의 투표수가 기록되었다는 것은 참여가 많이 이루어졌다는 뜻이고 이 말은 다시 특정 국가나 위치에서 중대하고도 관심이 있는 문제라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코스모 튜리뷰널은 그것을 검증하고 확인하고자 투표수를 진입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코스모 튜리뷰널은 기본적으로 중재인 이라는 전문가에 의해 사건들이 다루어지는 곳입니다. 여기서 중재인은 전 세계에 관련 영역 전문가와 경력가 그리고 많은 경우 관련 영역에서 종사하고 있는 집단들을 뜻합니다. 유저는 코스모 튜리뷰널에 진입한 케이스에 있어 필요한 중재인을 모집하고 의뢰해야 하며, 그렇게 모집된 중재인들은 각자의 국가를 대표하는 대표자로써의 자격으로 케이스 해결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케이스가 코스모 트리뷰널에 진입하는 순간, 합의와 협상은 더 이상 불가능하며, 중재자인들의 최종적인 판단에 의해 케이스가 해소될 수 있는 선언과 주문이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케이스들은 중재자들에 의해 일차적인 숙의와 투표를 거쳐 선언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진행과정이 공개되며, 선언의 단계에서는 모든 중재자들이 모여 판단결정과 선언을 선포하는 장면을 실시간 생중계로 전파됩니다.